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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누군지 모릅니다 그래서 꼭 알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나는 더욱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나는 나를 향해 달립니다 필사적으로 뛰어갑니다 내가 나보다 빠른 것을 알면서도 끝없이
질주합니다 그러나 나는 하염없이 멀어져 가기만 합니다
하지만 알 것도 같습니다 모두가 잠든 새벽 그윽한 기운을
맛보며 홀로 고요한 곳에서 골똘히 생각에 잠길 때, 아니 생각을 떨칠 때, 나는 나를 알 듯합니다 해맑은 아침 햇살에 빛나는
산사의 숲길을 걸으며 인연이 닿은 중생과 마음으로 이야기할 때 나는 내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손에 잡힐 듯 마주칠 듯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믿습니다 산길을 거닐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이름 모를 들꽃에서 나를 볼 것임을 퇴근
시간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 전동차에 오르는 어느 회사원의 눈망울 속에서 나를 만날 것을 흐르는 시냇물을 바라보며 말없이 말을
거는 흰 바위에서 나의 모습을 알아차릴 것을
나는 어디에 있는가요 여기에 있고 저기에도 있고 이곳에 없고 저곳에도
없습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우리입니다
- 유필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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