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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110시간, 285km.'
월출산에서부터 무등산을 거쳐 내장산으로 향하는 호남국공연산이라는 코스가 있다. 상당 부분 호남정맥을 따른다. 우리나라에 있는 여러 산줄기 종주 코스 중 가장 험하고 힘든 곳으로 곧잘 꼽힌다. 고저변화가 몹시 심하고, 사람들이 거의 걷지 않아 길 찾기가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키워드림
지금껏 많은 이들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중도에 탈출하는 비율이 훨씬 많다. 이유는 상기에 설명한 두 가지가 주요하지만, 한 가지 더 있다. 다른 산줄기와 다르게 도중에 들를 만한 식당이나 펜션, 편의점이나 마을 따위가 좀처럼 없다. 재정비하거나 지원을 받으려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슷한 거리나 난이도의 산줄기를 완주해 본 경히트넷
험이 있어도 호남국공연산은 좀처럼 도전할 엄두를 내기 어렵다.
그런 길을 70세가 걸었다. 채희철씨다. 1956년생. 옛날 나이 기준이다. 4월 30일부터 5월 7일까지 285km에 이르는 기다란 GPS 궤적을 몸으로 그렸다. 순수 산행시간은 110시간. 다른 이들에 비해 좀 더 헤매고, 좀 더 오래 걸었다는 평이다. 나이도 있지만 악천후캔들미디어 주식
의 영향도 컸다. 일주일 중 4일간 비가 내렸다.
이번 호남국공연산 산행 중 화이팅 포즈를 취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완주를 해냈다. 평소 어떻게 몸관리를 했기에 가능했던 일인지 물었다. 술과 담배를 철저히 금했다든지반도체테마주
, 매일매일 동네 뒷산을 올랐다든지 하는 내용을 기대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기가 차다.
"관리요? 저 등산 접은 지 10년차인데요?"
소화불량 고치러 용마산에 오르다
채씨는 충남 홍성이 고향이다. 군에 입대할 때까지 쭉 홍성에서 살았다. 제대하고 나선 서울로 상경했고, 이후 지금까지 운수업계통에 종사하쏠리드 주식
고 있다. 현재는 택시를 몬다. 그는 "하루 평균 200km, 주말엔 600km 가까이 운행했다"고 전했다. 단순 계산하면 지구 65바퀴쯤을 차로 달렸다.
"어릴 때 아버지가 한 번에 쌀가마를 두 개씩 지고 다닐 정도로 장사 체질이셨어요. 그 피가 좀 진했는지 저도 살아가면서 큰 병도 없었고 아픈 적도 없었습니다."
백두대간을 5번으로 나눠 완주했다. 뜻밖에도 완주한 후 찾아온 건 허무감이었다고 했다.
학교에서 달리기 선수도 몇 번 했다. 하지만 산은 전혀 타지 않았다. 산을 오르는 게 재미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산을 만나게 해준 건 군대였다. 강원도 양구 백석산(840m)에 있는 부대에서 복무하게 됐다.
"중대본부 통신병을 했어요. 매일 일과가 산 아래 연대로 내려가서 암구호와 편지를 수령해서 산 위에 있는 중대로 배달하는 거였죠. 훈련을 하면 무거운 무전기를 메고 중대장을 따라다녔고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몸이 만들어질 수 있었어요."
물론 백석산을 오르내리면서 그게 '등산'이라곤 생각하진 않았다. 즐겨야 하는데, 안 즐거웠다. 단지 반강제적으로 등력이 좋아졌을 뿐이다. 그래서 제대하고 나서도 산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산을 오르는 즐거움이란 게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렇게 40대 초반이 될 때까지도 그에게 비밀이었다.
호남국공연산 완주 기념 사진.
"나이가 30대 후반에 다다르니 몸이 좀 안 좋아지더라고요. 소화불량이었어요. 용하다는 대학병원과 한의원을 안 가본 데가 없었어요. 그런데 검사하는 곳마다 전부 이상 없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미칠 노릇이었죠. 뭘 좀 먹기만 해도 배에 가스가 차서 진짜 괴로웠거든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늘 앉아서 운전만 하니 신경 쪽이 고장 났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일단 운동부족이 원인일 것 같아서 헬스장을 찾았다. 5~6년 정도 꾸준히 운동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사는 맛이 안 날 정도였다. 속이 늘 더부룩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창회에 나갔는데 친구가 등산을 권했다. 산이 다 낫게 해준다고 했다. 반신반의했지만 밑져야 본전이기에 집 근처 용마산(348m)을 올라보기로 했다. 그런데 몸이 예전에 백석산을 날아다니던 그 몸이 아니다.
"폐가 찢어질 것 같고 심장은 터질 듯했어요. 고작 300m 오르는 데 5번이나 쉬어야만 했죠. 그 정도로 몸이 안 좋아진 상태였어요. 그래도 꾹 참고 하루, 이틀 올라보니 뭔가 조금씩 좋아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이젠 한 번도 안 쉬고 용마산을 올랐다. 그리고 늘 더부룩하던 속이 점점 좋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야가 갑자기 넓어졌다. 멀리 수락산과 도봉산이 보였다. 이제 용마산이 가뿐하니 저기도 한 번 올라가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일단은 좀더 단련하려고 6개월 더 출근하기 전에 용마산을 한 번씩 오르는 생활을 했다. 그러자 몸이 엄청 좋아졌다. 그리고 옆에 솟은 수락산을 올랐다. 펼쳐지는 세계가 속된 말로 미쳤다. 그렇게 산에 미치게 됐다.
호남국공연산 산행을 한 일주일 중 4일 동안 비가 왔다. 비가 스며들지 않도록 비닐로 하체를 꽁꽁 감쌌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장거리 코스 섭렵
몸이 좋아지니 산에 안 갈 수 없었다. 예전엔 장거리, 장시간 운전을 하고 나면 너무 피곤했다. 퇴근하면 파김치가 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산을 다니고 나니 아무리 오래 일해도 피곤하지 않고, 퇴근해도 멀쩡했다. 300m 산을 올라도 이 정도로 몸이 좋아지는데 더 높은 산을 오르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 됐다. 어느 산을, 어떻게 가볼지 고민하던 찰나, 한 산꾼과 우연한 만남이 있었다.
"강북5산, 지금은 불수사도북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그 코스를 산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알려줬어요. 그땐 대한산악연맹에서 전국 산악인을 대상으로 불수사도북 종주 대회를 한 2년 정도 열었답니다. 2인 1조로, 스탬프를 찍으면서 16시간 안에 완주하면 산악인 인증서를 줬대요. 그러다 산악마라토너들이 와서 대회를 휩쓰니까 이런 건 등산이 아니라면서 대회 자체를 없애버렸다죠."
설악산 대청봉에 수박을 들고 올랐다.
그 산꾼은 그렇게 딱 2번 열린 대회에 출전해 본 사람이었다. 그에게 꼼꼼하게 코스 정보를 듣고 중계초등학교부터 불광중학교까지 걸어봤다. 채씨는 "정말 최고의 산줄기였다"고 했다. 일단 집에서 가까운데 완주하는 보람도 있고, 보여 주는 풍광도 다양하고 환상적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그러다 한 산악회에서 '희망새'란 닉네임을 쓰는 김경현씨와 산 친구가 돼 같이 발맞춰 걷게 됐다. 같이 장거리 종주를 주로 하는 J3클럽이란 산악회에 가입해 그곳에 모여 있는 장거리 코스들을 싹 쓸었다. 그렇게 설악태극, 지리태극, 영남알프스, 백두대간 등 전국의 이름 난 종주코스들을 걸어 나갔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를 모토로 삼았습니다. 얼 만큼 걸어야 내가 버거워할지, 그냥 순전히 그게 궁금했어요. 그래서 한 번에 수백km씩 걸었죠. 그러다 마지막에 맞닥뜨린 것이 백두대간 5구간이었어요. 혹서기에 백두대간을 5번에 걸쳐 나눠 걷는 프로젝트였죠. 한 구간당 100~200km 정도 됐는데 그걸 무지원으로 가자고 합디다. 지금까지 걸으면서 쌓은 내공이 있으니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리고 했어요."
그렇게 연중 가장 뜨거운 날, 그보다 더 뜨거운 땀을 흘리며 진부령에 도착했다. 졸업식이라고 산악회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축하의 말을 건네 왔다. 그런데 뭔가 맘이 석연치 않았다. 의외로 여태껏 도전한 것 중 가장 힘든 길을 완주하고 찾아든 건 허무감이었다.
"물론 더 어려운 조건에서, 더 힘들고, 더 길게 걸을 수 있는 건 얼마든지 있었어요. 대표적으로 백두대간 일시종주가 있죠. 하지만 어디까지나 제가 산에 오르는 조건은 '일을 하면서'입니다. 제가 등산하겠다고 수십 일 동안 운전대를 놓으면 가족들이 곤란해지겠죠."
용마산에서 만난 채희철씨.
그러니까 그가 도전거리가 다 소진됐다고 느낀 것에는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 할 만한'이란 전제가 붙는다. 정맥이나 지맥, 기맥 등 다른 산줄기를 나눠 걸을 수도 있었겠지만 뭔가 열정을 발산할 만한 대상으로 여겨지진 않았다. 그는 그 마음을 "차도 좋은 걸 타다보면 아래 클래스를 타기 싫어진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툭, 산을 끊었다.
10년 농사짓다가 돌연 생의 마지막 도전장
그렇게 등산을 접은 게 정확히 10년 전이다. 산을 열정적으로 오르던 사람에서 '산을'이란 글자가 떼어졌다. 산이 없어졌지만, 열정은 남았다. 도무지 몸을 가만히 둘 수 없어서 선택한 게 바로 농사였다.
"고향인 홍성에서 농사를 지으려고 땅을 조금 사고, 빌리고 했어요. 고향 어르신들이 제가 와서 농사짓는다고 설치니깐 3년도 못 채우고 나가떨어질 거라며 웃더라고요. 그런데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피곤하지 않았어요. 그때 깨달았죠. 산이 정말 많은 걸 제 속에 남겨 줬다는 걸."
무박종주를 많이 한 탓인지 잠을 적게 자도 됐다. 그래서 농번기엔 오후 4~5시에 서울에서 택시를 시작했다가 새벽에 손님이 드물어지면 홍성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중간에 휴게소에서 2시간 정도 쪽잠을 자고 농사를 짓다가 다시 밤에 서울. 그리고 새벽 2시까지 또 택시를 몰다 집으로 돌아와 잔다. 이런 일과를 몇 번이고 반복해도 꽤 할 만했다고 한다.
어느 산을 가든 스틱을 사용한다. 또한 캠프라인의 등산화를 선호한다.
"가장 많이 지을 땐 1만2,000평에 밤나무며 콩, 마늘, 땅콩, 들깨, 고구마 등을 심고 재배했네요. 산도 도전이지만 농사도 만만찮게 큰 도전이더라고요. 둘이 은근 비슷해요. 혼자서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또 앉아서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하고요."
산꾼들 소식은 같이 산에 다녔던 이들에게서 종종 들으며 그렇게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어느덧 나이는 70에 닿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호남국공연산'이란 말이 이따금 들린다. 월출산~무등산~내장산을 잇는 길이라는데 거기에 악명이 줄줄이 따라붙었다. '절반은 중도에 포기한다', '가장 힘들다', '길도 없다' 등의 평가다. 이제 더 이상 산을 향해서 타오르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마음이, 그리고 10년이 지나며 진짜로 식은 줄만 알았던 심장이 별안간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더 늦어지면 이런 도전을 할 수 있는 나이를 훌쩍 넘기게 될 것 같았다.
"하고 싶은 건 꼭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호기심이 다시 고개를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한 번 완주하겠다고 하니 주위에서 다 뜯어 말렸어요. 집사람은 과로로 죽는다고 반대했고, 같이 산 다니던 사람들도 '나이 70에 산행을 안 한 지 10년인데 무리'라고 했죠. 그런데 마침 시노기란 분이 호남국공연산 갈 사람을 모집하는데 '끝까지 함께 간다'고 공지해 뒀더라고요. 완주해도, 중도하차해도 모두 같이 하자는 거였죠. 그래서 믿고 갔어요."
채씨는 유쾌하고 긍정적인 성격이라 늘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물론 도전을 결심하곤 나름 몸을 만들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용마산을 매일 올랐다. 그리고 불수사도북도 한 번 했다. 부지런히 가도 예전의 그 기록은 안 나왔다. 그래도 부지런히 오르고, 또 오르면서 준비를 했다.
"가보니 악명 그대로였어요. 길도 제대로 없고 진짜 엉망진창입니다. 숲은 원시림이에요. 게다가 비도 나흘이나 내렸습니다. 산에서 비 맞는 게 가장 힘들잖아요. 게다가 이런 장거리 종주에서 비가 오면 잘 데가 없어서 더 문제예요. 흔히 '까딱잠'이라고 30분이라도 누워서 눈을 붙여야 되는데 그럴 공간이 없었죠. 게다가 묵은 낙엽에 미끄러져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우거진 잡목에 긁히기도 하고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도 과거에 비해 좋아진 건 길은 GPS 궤적으로 찾으면 그만이란 점이다. 한 호남국공연산 완주자의 데이터를 받아서 따라가는 데 문제가 있기도 했다. 궤적 데이터가 수집된 지 시간이 오래 지나서 중간에 집이 생기거나 길이 없어지곤 했던 것. 그래서 남들보다 더 오래, 더 멀리 걸어야만 했다.
완주 성공의 비결 '거북이'
이런 여건 속에서 완주하는 데 성공했다. 벼락치기로 만든, 그것도 70세의 몸이 이를 성공해 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비법을 묻자 그는 뜬금없는 동물을 얘기했다. 바로 '거북이'.
"저는 등산에 입문하고 나선 늘 거북이와 토끼 이야기를 생각해요. 물론 제가 거북이죠. 남들은 토끼처럼 트레일러닝이라고 달려 나가지만, 저는 묵묵히 제 걸음을 걸어요. 숨이 약간 찰 정도로 느릿느릿 가죠. 그러다보면 저기 앞서 갔던 토끼들을 만날 수 있거든요."
그는 과거에는 체력으로 걸었지만 이번엔 정신력으로 걸었다고 했다. 호남국공연산도 도중에 포기하려고 했다. 100km쯤 진행하니 체력적으로 더 이상 무리였다. 그런데 조금만 더 가보자고 동행한 이와 서로 다독이며 가다 보니 어느 순간 끝이 보였다고 했다. 또 무지원으로 해보려다가 비가 계속 오자 지원을 받기로 바꾼 것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됐다.
채씨는 늘 두건이나 모자로 머리를 가린다. 그는 달바우대사란 닉네임을 사용하는 데서 그 이유를 가늠해 볼 수 있다며 웃었다.
"완주했을 때 엄청나게 뿌듯했어요. 그리고 이런 장거리 종주는 그만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지인들과 근교산을 찾거나 산악회와 함께 당일치기 산행 정도를 다니려고 해요. 최대 30km 제한을 스스로 두려고 합니다."
그는 이번에도 길 끝에서 다시 한 번 산에서 내려간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60세의 그는 진부령에서 허망함을 느꼈지만, 70세의 그는 만족감을 가졌다. 그럴 수밖에 없다. 70년 동안 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늘 말했고, 생의 마지막 도전을 정말로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저를 돈키호테라고 해요. 생각 없이 덤벼든다고요. 사실 좀 그래요. 할 수 있을지 없을지 그런 불안감을 가져본 기억이 살면서 별로 없어요. 열심히 하면 될 것이고, 당연히 나는 할 수 있다고 늘 믿어요. 평소 성격이 긍정적이라 그런 것 같아요."
극한산행에선 체력과 정신력이 모두 중요하지만 둘 중 하나가 모자랄 때 더 문제가 되는 것으로 많은 이들이 정신력을 꼽는다. 아무리 체력이 받쳐줘도 정신력이 없으면 갈 수 없고, 체력이 좀 안 되더라도 정신력이 강하면 이겨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게 이겨낼 때의 쾌감과 만족감 때문에 극한산행에 푹 빠지곤 한다.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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